심상치 않은 한 주였다. 여름도 오기 전에 장마처럼 긴 비가 내렸다. 여름이 오려다 물벼락을 맞은 건지, 오락가락 날씨 덕분에 감기에 걸렸다. 회사를 쉴 순 없으니 칼퇴를 하고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잘 먹고 잘 자기.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자니까 감기도 흐지부지 사라질 모양이었다. 금요일 저녁에도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주말엔 푹 쉬어야겠다. 오후엔 약속 있으니까 낮에라도 푹 쉬어둬야지, 빨래랑 설거지도 미리 해치웠으니까.
그렇게 번쩍 눈을 뜬 토요일 아침. 드디어 비가 그쳤다. 창밖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시, 창틀에 더러운 물이 새까맣게 고인 게 눈에 들어왔다. 모를 때나 그냥 뒀지, 이걸 어떻게 넘어가나. 일회용 장갑 끼고 집안의 창틀을 모두 닦아냈다. 쪼그려 앉아 베란다 창틀까지 닦아냈더니 두 시간쯤 지나 있었다. 물티슈 한 통을 다 썼다. 남은 물티슈로 베란다 바닥을 닦아봤더니 새까만 먼지가 묻어나왔다. 에휴. 약속시간이 가까워져서 서둘러 일어났다.
빨랫감은 매일 쌓이고, 샤워기 필터는 어느새 더러워진다. 제멋대로 모가 벌어진 칫솔을 버리려니 쓰레기통이 가득 차 있다. 일요일 아침 베란다 바닥을 닦으면서 직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날, 그런 행복한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창틀을 닦지 않았다면 그런 행복에 하루만큼 더 멀어졌을 거다. 오늘은 어제보다 하늘이 파랗고, 감기도 가셨고, 할 일도 적다. 그새 창틀에 내려앉은 먼지는 못 본 셈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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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내 꿈은 락스타가 되는 것이다. 락스타가 되려면 작곡을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코드부터 익혀야 할 듯싶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이야기인데, 내 피아노 실력은 아직도 엉망진창. 아이패드 앱으로 혼자 배운 거라 근본이 없다. 아직도 손가락이 꼬이고, 샵이나 플랫이 붙은 악보는 연주할 엄두 못 낸다. 귀찮고 지루해서 한두 달씩 쉬어간 때도 있다. 그래도 1년 전보다는 지금 더 꿈에 가까워졌다.
왕초보를 위한 아이패드 피아노 앱은 구독 해지했다. 오늘부턴 화성학을 배울 수 있는 새로운 피아노 교재를 시작할 거다. 다음주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일렉기타를 사러 간다.
내가 락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날,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것보다 재미있다. |